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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민] 호모포비아 김태형(후회공)

bgm : 안아줘_정준일


네모난 나무 책상에 앉아 연필 잡기 조차 힘겨워 보이는 아이들이 10개로 나뉘어진 칸에 따라 선생님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감기가 낳았다인가? 낫았다인가? 둘 다 아닌가? 흐응.. 모르겠다. 빨간 색연필로 제출했던 받아쓰기 종이엔 작대기들 뿐. 태형은 받아쓰기 노트를 덮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곤 옆에서 아무런 표정도 없이 받아쓰기 노트를 덮는 지민을 보았다.


- 짐나, 너 받아쓰기 몇 점이야?

- 나? 나 다 맞았능데..


지민이는 이 번에도 다 맞았구나. 선생님한테 오늘도 ABC초콜릿 받겠네.. 난 집에 가서 엄마한테 분명 또 혼날 텐데 지민이는 칭찬 받겠지. 부럽다. 


- 오늘두 엄마한테 혼나면 우짜지..

- 그럼 오늘만 내 꺼랑 받아쓰기 노트 바꾸 가.

- 징쨔? 그럼 너눈?

- 난.. 난 괜차나! 하루 쯤이야 모.

- 허얼 고마워 지미나!


태형은 칭찬 받을 생각에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노트 앞에 커다랗게 써 있는 '해바라기반 박지민' 이란 이름 때문에 결국 또 꾸지람을 받게 되었지만, 다음 날 태형은 머쓱히 웃어 보일 뿐이었고 지민 또한 그러했다. 




병설유치원에 다니던 둘은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태형과 지민은 당연한 가장 가까운 친구. 제일 친한 친구.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감히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을 정도로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보며 자라나는 사이. 그게 태형과 지민의 겉보기 모습이었다.



유독 말 수가 많고 밝은 성격에 태형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에 상대적으로 위축 받는 것인지 말 수도 상대적으로 적고 차분하던 지민에, 태형은 혹여나 지민이 소외감이나 외로움 같은 걸 느낄까 늘 시도 때도 없이 지민과 있으려 했고 어깨 동무하며 지민이 여러 친구들을 폭넓게 사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그럼에도 지민은 그런 태형의 의도를 들어 주지 않았고, 늘 그래왔듯 태형의 옆자리를 지켰다.


- 나 어제 문자로 민지한테 고백 받았어.

- 그래? 

-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어서 그냥 알았다고 했는데 이제 어떡하지.. 아, 나 이거 엄마한테 말 안 했는데.. 이거 비밀이야, 알았지? 절대 말하면 안 돼! 약속해.


그런데 나, 나 여기서 너한테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거절하라고 하면, 그럼 내가 나쁜 놈일까? 거절할 이유가 없는데 거절하라고 하면 내가 그 애의 마음을 무시하는 게 될 거고, 난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지. 그래도, 그래도 거절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럼 네가 내 부탁을 들어줄까? 그럴린 없겠지. 연애도 끼리끼리 하는 거니까. 적어도 너랑 나는 아니니까. 언제까지 내가 네 옆자리에 있을 순 없으니까.

지민은 태형의 옆에서 태형이 처음으로 여자친구와 손을 맞잡는 모습을 지켜 보았고 기념일 같은 걸 맞이했다며 그 둘을 축하해 주기 위해 선심 성의껏 축복해주기도 했다. 애써 웃으며, 참으며, 숨기며, 태형의 주위를 위성처럼 맴돌았다. 난 너에게 운석이 될 순 없겠지. 너의 마음 깊숙이 들어갈 순 없겠지. 늘 이렇게 언제 떨어져 나갈 지도 모른 채 너의 주위만을 매일 매일, 같은 궤도로 도는 게 내 최선이겠지. 




태형과 지민이 지망한 중학교가 갈라지고 자연스레 그 3년간 그 누구보다도 가깝던 그 자리에 틈이 벌어졌다. 어쩌면 그게당연한 결과였다. 지민은 일부러 태형과 정반대로 지망하여 제출했기 때문에. 그 때부터 지민은 열심히 태형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젠. 갈수록 욕심이 나고 질투가 나고 분수 넘치는 행동을 상상하게 되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으니까.

우리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았으니까, 그게 맞다고들 하니까 지민은 더더욱 자신을 숨기고 피하고 도망쳤다. 그들 사이에서 돌연변이인 존재처럼 보여 이 사회에서 추방 당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살아 남기 위해, 더욱 말수를 줄이고 교우 관계의 폭도 얕아져 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태형과 연락 끊은 지도 오래. 어딜 지망하는지도 모른 채 지민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제출했고, 지민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태형과 같은 교복을 입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 태형의 모습은 초등학교 때 마지막 기억과 같이 여전히 언제나 그렇듯 밝고 쾌활함이 넘치며 주변을 선동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그림자처럼 지민은 말 없이 소극적인 아이가 되어 교실의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 야! 너, 박지민 아니야?


하마터면 못 알아 볼 뻔 했네. 생글거리며 웃어 보이는 태형이 지민의 손을 덥썩 잡아 챘다. 그러자 지민은 그런 태형의 손길을 뿌리치며 제 양 손을 맞잡아 쥐어 책상 아래로 꽁꽁 숨겼다. 


- 어, 응, 오랜만이다.

- 너 왜 이렇게 변했냐, 어째 예전보다 말라 가는 것 같아.

- 그러게.


넌 여전하구나,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대로야. 


- 잘 지냈어?

- 응, 나름대로.

- 갑자기 연락도 안 되고 도통 닿을 길이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다시 봐서 다행이다. 자칫 평생 못 볼 뻔 했네.


3년간 일정한 맥박을 잘 유지하던 지민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다시 그 때의 그 맥박으로. 그 때처럼 이렇게 태형과 마주보며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그냥 날 잊어 버리지. 봐도 못 본 척 해 버리지. 나는, 나는 아직도 널 쳐다 보는 것 조차 힘든데. 왜 자꾸 밀쳐 내도 다가 오는 거야. 애써 도망가도 왜 종착점에 네가 서 있는 건데. 넌 나와 달라. 다르다고. 적어도 나처럼 긴장되지 않겠지, 떨리지도 않겠지. 혹여나 이런 날 들킬까 노심초사 두려워 하지도 않겠지. 내가 정말 널 좋아하기라도 하는 걸까. 내가 정말 널 좋아해도 되는 걸까. 도저히 난 말 못 하겠어. 네가 다칠까 봐, 상처 받을까 봐. 나도 이젠 날 모르겠어. 지민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다른 곳을 향하다 태형의 손에 의해 저지되었다. 지민의 한 쪽 뺨을 쥐고 고개를 제게 향하게 해 서로를 똑바로 쳐다 보자 지민이 옆으로, 아래로, 시선을 피했다. 그에 태형이 얼굴 한 가득 물음표를 먹고 지민의 눈동자에 따라 옆으로, 아래로, 고개를 뒤틀었다.


- 넌 내가 반갑지도 않냐?

- 왜 나 피해?

- ..그런 적 없어.

- 그럼 나 봐 봐. 


지민을 빤히 바라 보는 태형의 시선에 지민이 아랫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양 손으로 주먹을 세게 쥐곤 제 앞에 있는 태형을 뿌리치며 책상에 엎드려 태형에게서 떨어졌다. 희망고문도 아니고 이게 뭐야 진짜.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 좋아해, 태형아.


하아.. 끝내 지민은 세차게 뛰던 가슴을 부여잡고 태형에게 마음을 전하였고 부여잡힌 가슴은 진정되긴 커녕 더 세차게 뛰고 있었다. 내 마음을 전했어. 드디어 말야. 


- 미안, 난 그런 취향,

- 알고 있어. 그냥 나는 내가..!


나는 너한테 뭔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같은 마음이길 바라는 건 더더욱 아냐. 나는 그냥, 그냥 내가 이렇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내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어. 난 이런 사람이야. 난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우린 서로를 우정으로 사랑하지만, 난 거기서한 발자국 더 나아가 널 보고 있었어. 그리고 난 지금 그런 나를 확인했고, 네가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야.






- 아니, 잠깐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지민아.


태형의 표정이 굳혀졌고 지민의 양 어깨가 부서지도록 세게 붙잡아 지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난 그런 취향 존중해 줄 생각이 없어.


-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는 게 역겨워 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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