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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미래에서 기다릴게 01

당신의 소년




' 속보입니다. 방금 전, 서울 한강 유역에서 20대 중반의 민 모씨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자살로 추정되어 계속해서 높아지는 자살률에... '








2015년 1월 1일. 아직 꽃피우지 못한 20대 중후반을 달리던 신입 음향 감독, 이 나이 되도록 사기도 많이 당했고 쌓인 빚에 고향 내려갈 생각은 꿈에도 없다. 이뤄낸 성과 하나 제대로 없다니. 밤 12시. 한강 다리 위, 과거 언젠가, 아니 미래 언젠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누군가도 여기에서 나와 같은 마음으로 매달려 있지 않았을까 싶다. 더이상 숨쉬는 공기조차 너무 나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산소 축 낼 바에 차라리 단명해 버리는 게 속 편하지 않을까. 이래저래 무시당하면서 살아도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이 악 물고 서울 상경한 건데. 윤기가 눈을 질끈 감고 팔에 힘을 풀었다. 이제 이 손, 이 손을 놓기만 하면 된다. 


- 형!


처음 듣는 목소리. 누구지.


- 야 민윤기!!


누구야, 누가,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여기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는데 누가, 그것도 형이라 부르면서 내 귀를 간지럽히는지. 눈을 뜨고 뒤를 돌아 보았다. 멀리서부터 열심히 달려 오는.. 남학생..? 그것도 눈물로 얼굴 전체를 덮으며 나에게 달려 오고 있다. 무지 서럽게 울면서.


- 하아.. 하.. 하아.. 내 손, 잡아요 빨랑.

- 누구야 너.

- 그게 중요해요 지금?! 빨리 안 잡아요? 당신 때문에! 너 때문에 내 애인까지 죽게 생겼잖아! 그니까 빨리 잡으라구요!

- 뭐야, 내가 고작 너같은 처음 보는 꼬맹이 손에 잡히려고 이러는 줄 알아?  

- 당신이 죽든 말든 상관없는데, 당신 때문에 내 애인까지 죽게 생겼으니까 빨리 내 손 잡으라구요! 당신 지금 죽으면 엄청 후회하니까.

- 후회할 것 없어, 아무것도.

- 지금부터 10분 후에 연락 하나 올 거예요. 그 거 받고도 죽고 싶으면 죽어요. 안 그럴테지만.


가슴팍에 달린 명찰, '박지민'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학교 이름, '부산예술고등학교'. 여기가 서울인데, 분명 서울인데 부산예고 남학생이 지금 나를 살리겠다고 날, 날 끌어 당기는 건가. 알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래 10분. 그 10분 후 그 연락의 호기심. 그래, 학생, 방금 네 말이 불러 일으킨 내 호기심이 나를 살렸다. 생명의 은인이야. 다리에서 난간을 다시 건너 박지민이란 아이 앞에 섰다. 달려 오느라 난장판이 되어 버린 머리칼하며, 왜 운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물자국들로 얼굴이 엉망이었다. 


- 미래에서 기다릴게요.


그리고 내 앞에서 사라진, 정확히 1분만에 사라져 버린 그 아이. 옆으론 자동차들이 거세게 달리고 인도 한 가운데 털썩 주저 앉아 휴대폰만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10분 후, 정말 도착한 문자 한 통. 부산독립영화제 초청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서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가슴이 터지도록. 아니 이 순간만큼은 정말 터져버려도 괜찮다는 듯이.


며칠 후, 윤기가 서울역에서 부산행 티켓을 뽑았다. 이 번에 공모해서 냈던 부산독립영화제에 향하는 발걸음이다. 윤기는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 잡고 버스 구석에 착석했다. 3등 상 수상이었다. 처음으로 이뤄낸 성과에 1등보다도 더 서럽도록, 울보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함께 영화를 제작했던 팀 친구들도 몰래 몰래 눈물을 훔치는 듯 했다. 그리고 윤기는 영화제가 끝나기도 전에 뛰쳐 나와 택시를 타고 부산예고로 향했다. 박지민. 박지민. 오로지 그 이름 하나만을 기억하면서. 학교에 도착하자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 년만에 와 보는 학교에 이럴 땐 어떡하더라, 하고 주변 부산예고 교복 입은 학생 아무나 붙잡아 다짜고짜 박지민이라는 학생을 아냐며 물었다.


- 모르는데요. 처음 들어 봐요.


교내 행정실, 교무실에 들어가 박지민이란 학생이 여기 있느냐며 물었지만, 본교에 박지민이란 여학생은 있어도 남학생은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분명 내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분명, 분명 박지민, 부산예술고등학교, 이 교복, 모두 맞는데.. 귀신이라도 본 것일까, 헛것이라도 본 것일까. 텅빈 마음을 끌어 안은 채 학교 밖을 나섰다. 택시를 잡아 서울 상경을 위해 부산역으로 향하던 중, 큰 도로의 교차로, 빽빽한 교통로와 그 사이를 비집고 이동하는 인파들. 그리고 택시 안 윤기의 앞,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지민이었다. 분명 지민이었다. 양 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부산예고 교복이 아닌 다른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제 앞을 지나가는 지민이 있었다.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곧 꺼질 듯 깜빡이더니 이내 빨간 불로 바뀌었고 그에 지민이 성급히 뛰었다. 


- 박지민!


택시 창문을 열어 수많은 사람들 속 지민에게 외쳤다. 창문 밖으로 몸을 반절씩이나 내 놓고 손을 크게 뒤흔들며 지민을 찾았다. 그리고 바뀌는 신호등에 택시가 출발하고, 그제서야 지민이 한 쪽 이어폰을 빼며 뒤를 돌아 보았다. 뭐지 방금, 환청인가. 윤기는 인근에 서둘러 택시를 세웠다. 내가 봤던 그 아이보다 조금 더 앳되어 보이고 조금 더 작아 보였지만, 어쨌든 분명, 맞다. 그 아이였다.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에 눈 한 번 깜빡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보였다. 윤기가 다시 그 횡단보도로 달려가 보지만, 그 자리에서 지민의 체취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아 보아도 얻은 건 차오르는 숨결 뿐이었다.


그 이후, 윤기는 틈만 나면 부산을 왕복했다. 조금의 여유라도 생기면 부산에서 지민을 보았던 그 횡단 보도 앞을 몇 시간동안이나 서성였다. 하지만 끝내 지민을 다시 만날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 영화제를 시발점으로 윤기의 실력에 감동안 몇 감독과 연출가들에게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작품성을 중요시했던 윤기이기에 까다롭게 선정했고 영화 뿐 아니라 연극의 음향으로까지 스펙트럼을 넓혀가 영화계 스태프 사이에선 유명한 음향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2016년 1월 1일,


- 윤기 씨, 우리가 이 번에 '블랙스완'이라는 작품을 리메이크 하려는데..


윤기 앞에 놓인 시나리오와 스크립트를 훑던 윤기가 오랜 시간 끝에 입을 열었다.


- 하겠습니다 감독님.


이번에 이 영화를 하기로 한 이유를 작품성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대역 무용단이 부산예고의 무용단이었기 때문에, 헛된 희망이라고 한들, 이런 것이라도 잡아 보고 싶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며칠 후 부산에서부터 무용단 학생들이 상경했다. 총괄 감독부터 모든 총 책임자란 책임자들이 모여 심사하는 자리였다. 그 누가 주인공 역에 대역으로 뽑힐 것인가. 윤기는 늘 그래왔듯 냉철한 심사로 표정 변화 없이 눈을 치켜뜨고 지켜 보았다.


- 숨소리가 제 멋대로예요. 고도의 동작에서 나와야 할 숨소리가 미리 당겨지면 지레 겁 먹어 용기 내는 신참 같아 보이지, 절대 프로 블랙 스완의 여유로움이 보이지 않을 겁니다. 


무용단이라면서 이런 숨소리 하나 조절 못 하는 거야 뭐야. 심기가 잔뜩 선 채로 손에 쥐고 있는 서류들을 그대로 쭉쭉 흥미없다는 듯 넘기던 윤기였다.


- 안녕하세요.. 부산예고 예비 1학년 박지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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